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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는 門으로? 당기는 門으로?” ... 상의 ‘규제합리화’ 과제 건의 <고압가스 저장소 딜레마> - 대한상의, 민관합동 규제합리화추진단에 ‘139건의 기업현장ㆍ민생과제’ 제출 - [현장] 고압가스 저장소 딜레마: 누출 방지하는 ‘당기는 門’ vs 신속 탈출위한 ‘미는 門’ - [민생] ‘단종템’된 어린이 해열진통제가 아직도 ‘13개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에 - [성장] ESS, 안전 고려한 이격거리 가이드라인 마련
“A규정은 당기는 문, B규정은 미는 문, 어디에다 맞춰야 할까요?”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는 최근 기업별 의견을 모아 ‘기업현장의 규제합리화 과제’139건을 정리해 민관합동 규제합리화추진단에 제출했다고 29일 밝혔다. 건의서는 국민생활과 기업현장의 불합리한 애로와 미래 성장을 위한 제도개선 과제 등을 담았다.
건의서는 같은 문을 두고 두 규정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사례를 개선이 필요한 과제로 꼽았다. 현행 고압가스 저장소의 문은 가스누출 확산 방지를 이유로 출입문을 안쪽으로 당기도록 만드는 규정(고압가스 안전관리 규정)과 신속한 탈출을 위해 문을 바깥쪽으로 밀도록 만드는 규정(산업안전 관리 규정)이 충돌하고 있다. 실제 고압가스를 다루는 한 기업은 ‘고압가스 규정에 따라 당기는 문을 설치했는데, 산업안전 점검에서 지적을 받아 50여개에 달하는 문을 교체해야 한다’며, 두 규정의 일원화를 요구했다.
산업단지 창고임대 요건도 합리화해야 할 규제로 제시됐다. 산업단지 산업시설구역에는 원칙적으로 제조시설과 그 부대시설의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제조시설 없이 창고만 단독 설치하거나 별도 필지에 창고를 설치하는데 제약이 있다.
‘산단에선 창고만 추가 안돼요’ 대구의 한 산업단지에 입주한 A사는 주문이 늘어 기존 창고만으로 제품보관이 어려워지자 단지 내 유휴공장을 창고로 임차하려 했다. 하지만 제조시설도 늘려야 한다는 해석에 부딪혔다. 결국 산단 외부 물류시설을 이용하는 선택지만 남았다. 기업 관계자는“산업단지의 제조 기능을 지키자는 취지지만, 기업의 생산 확대와 수요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오히려 빈 공장을 방치하고 기업의 물류비 부담을 키운다”며, 제조시설을 운영 중인 입주기업이 자사 완제품 보관 용도로 추가 창고를 활용하는 경우, 이를 기존 공장의 부대시설로 인정해 달라고 했다. 성수기․수출물량 급증기에 한시적인 임차를 허용하거나, 장기적으로 산단 내 공동 물류창고를 조성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4년전 생산중단된 ‘어린이 해열진통제’ ... 편의점 13대 상비의약품에 아직도 포함
건의서는 국민불편 해소를 위한 민생규제도 담았다. 대표적인 것이 편의점용 어린이 해열진통제다. 정부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시간이나 공휴일에 24시간 편의점에서 상비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13개 편의점 상비의약품 중 어린이용 타이레놀 80mg과 타이레놀 160mg은 지난 2022년부터 4년째 생산이 중단돼 편의점에서 찾기 어렵다. 서울의 한 부모는 “생산 중단된 품목에 대해서는 신속히 대체품목을 재선정 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 편의와 기업경영의 디지털화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주주총회 소집통지의 전자화도 건의에 포함됐다. 상법상 주주총회 소집통지는 서면 통지가 원칙이고, 주주의 사전 동의가 있는 경우만 전자고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사전 동의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가 규정되어 있지 않고, 전자통지를 위해 개별적으로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기도 어려워 현실적으로 대부분 우편으로만 이루어진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내 상장사에서 매년 발송하는 주주총회 종이우편만 1억장”이라며, 주주명부에 이메일 등을 기재하도록 절차를 마련하고 전자통지를 원칙적으로 허용해 주주 편의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주총회 정보 전자고지 서비스는 2019년에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아 테스트한 바 있으며 별다른 사고도 없어 규제합리화가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다.
AI·재생에너지 시대 필수 인프라 ESS, 안전 고려한 이격거리 가이드라인 마련도 건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이격거리 기준의 선제적 정비도 건의에 포함됐다. 배터리를 집적하는 ESS 설비 특성상 안전 관리가 중요하지만, 주변 입지와의 이격거리 기준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재생에너지 확산과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으로 ESS 설치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인데, “기준이 없다 보니 지자체마다 판단이 달라 어디에 설치할 수 있는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기업들의 지적이다. 과거 태양광 이격거리가 지자체마다 100m에서 1km까지 제각각이다가 최근 법 개정으로 정비된 것처럼, ESS도 보급이 본격화되기 전에 입지 관련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기업들은 지자체 자율 권한은 유지하되, 중앙 정부 차원에서 이격거리 설정 시 참고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을 제시해줄 것을 제안했다.
‘국가전략기술에 전문연구요원 활용범위를 넓히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군 복무 대신 연구기관에서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지만, 그동안 중소기업 중심으로 배정되어 왔다. 그러나 국가전략기술 분야는 대기업 비중이 높은 현실을 고려할 때, 업계에서는 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석박사급 연구인력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미국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 규모는 2010년 약 9천명에서, 2021년 1만8천명으로 10년간 두 배 가까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기업들은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대기업 부설연구소에도 전문연구요원 배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밖에도 화물용 승강기에 물류센터용 고중량 이동로봇이 탑승할 때 일반 승강기 기준이 적용되는 문제를 개선하는 과제, 경기도의 섬유·염색업 중심 산업단지에 세탁업종의 입주를 허용하는 과제 등이 제시됐다.
대한상의 이종명 산업성장본부장은 “규제합리화위원회가 역대급 규모로 출범하고, 규제합리화추진단 운영이 본격화되는 만큼 기업들의 기대도 크다”며 “대한상의는 AI 규제지도 시스템, 규제샌드박스 등을 통해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현장애로를 발굴하고,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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